기타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1
kwonna
25~26p
[시미언]

바로 이듬해 봄, 아내는 딸 로즈먼드를 낳고 죽었어. 해산 직후에 침대에서 죽었지.

(중략)

버터가 듬뿍 들어간 튈과 바삭거리는 설탕 과자, 비스킷, 랑그드샤, 향료가 든 빵과자, 축제날 먹는 푸딩을 대접한 것도 나였어. 아내는 줄곧 정원에 틀어박혀 잇었거든. 아내는 행복해했어.
외바퀴 손수레를 밀면서, 손에 꽃삽을, 가위를, 작은 낫을, 물뿌리개를 쥐고서...
08.31 15:12
2
kwonna
26~29p
[내레이터]

그녀는 머리칼을 치켜 올려 밀짚모자 안으로 밀어 넣었지요.
정원 끝에,
버드나무들, 그리고 산사나무와 섞여
개암나무들이 자라는 롯에
박하나무들 속을 비틀거리며 걸어
연못에서 1미터 혹은 1미터 반 되는 곳에,
가족이 입회한 가운데
유해가 뿌려졌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연못에 뿌렸습니다.
사랑했던 아내이 유해를 천전히 물 위로
흘려보냈고,
자신의 시선을 쏟아부었고,
자신의 숨결을 퍼뜨렸고,
기슭에 사슬로 맨 균형 잡힌 보트에 올라탔고,
한 손을 들어 아직 온기가 남은 그녀의 삶을 뿌렸습니다.
그녀의 몸은 어두운 물의 회색빚 수면 위에,
줄지어 매인 배들의 검은 형체들 옆에
거의 그대로 떠 있습니다.

흩어진 유해들이 밤의 숨결 속에서
차즘 눅눅해지며,
느리게, 느리게 물로 젖어 들어가다가
이윽고 사라집니다.
입을 쩍 벌린 작은 잉어들과 모셈치들이 있는
물속에서 차츰 사라져 갔습니다.
희한하게도 물고기들의 입가에
하얀 테두리가 생겼네요.
참으로 아름답던 갈색 머리이
젊은 여인은 그렇게 잔잔한 회랙빛 수면 아래로 사라졌습니다.
갓 낳은 딸을
방 안 요람 속에
홀로 남겨둔 채 말입니다.

한창 젊은 나이의 어머니는
그렇게 물에 비친 나뭇가지들의
움직이지 않는 그림자 아래로 사라졌고,
잎사귀들 틈새를 꿰뚫는 황금빛 햇살의 반사뢍 아래로 사라졌습니다.

사라졌단 말입니다, 당신이 사랑했던 아내가,
연못 속으로,
나룻배 옆으로,
그녀가 사랑했던 정원 한가운데로.
08.31 15:17
3
kwonna
48~52p
[로즈먼드]
아빠, 제가 뭘 잘못했나요?

[시미언]
그런 거 없다. 넌 아무 잘못도 안 했다.

[로즈먼드]
그럼 왜 절 쫓아내는 건데요?

[시미언]
안심해! 마음 놓아라, 사랑하는 로즈야!
넌 잘못한 거 하나도 없으니까, 얘야...

[로즈먼드]
그렇다면 왜 갑자기 "자, 딸아. 내게서 떨어져 다오"라고 말씀하신 거예요?

(중략)

[시미언]
딸아, 정말 그 이유가 알고 싶으냐?

[로즈먼드]
네, 알아야겠어요.

[시미언]
네 나이가 곧 몆이 되지?

[로즈먼드]
스물 여덟이요.

[시미언]
네 엄마는 몇 살 때 돌아가셨지?

[로즈먼드]
스물넷이요.

[시미언]
그게 이유란다. 갑자기 죽은 네 엄마보다 넌 나이가 더 들었어. 엄마가 널 낳고, 내 품에서 떠났을 때 말이지.
엄마는 네게 젖을 물릴 시간조차 없었지...

그의 목소리가 갈라진다.
사제는 더 크게, 점점 더 격양된 어조로 말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시미언]
게다가 넌 점점 더 엄마를 닮아 가는구나.
늦게나마 엄마를 쏙 빼닮아 가고 있어!
(울부짖는다.) 살아 있는 널 보는 게 나로선 얼마나 견디기 힘든지 넌 모를 거다!
내가 늙는다거나 죽을 거라는 사실이 무서운 게 아니라, 네가 나이 먹어 가는 걸 보는 게 견딜 수 없단 말이야!
08.31 15:26
4
kwonna
64p
[시미언]
사실 네 삶에 대체로 나는 부재하지.
심지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어, 얘야.
넌 내 자식이지만, 그건 내 알 바가 아니라고.
네 삶이 내 인생은 아니니까.
네 엄마가 내 삶이란다.
난 그녀를 사랑해.
그녀의 기억을 놓치고 싶지 않아.
난 늘 그녀의 시선을 느끼며 살고 있단다.
그녀의 죽음이 죽어 버리게 하고 싶지 않은 거야.
네 엄마는 아주 쾌활하고, 결단력 있고, 독립적이고, 에너지가 넘쳤지.
얼마나 키가 크고, 날씬하고, 아름다웠는지 몰라!
나는 지금 그녀를 지켜 주는 거란다.
지속시키는 거라고.
내가 그녀를 자기 수명보다 더 오래 살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아.
그녀가 가장 사랑했던 것들 속에서 나 혼자 있고 싶구나.
그녀의 정원, 버드나무 숲, 장미원, 나룻배, 식사들, 열정들, 요리법들, 광채들...
08.31 15:33
5
kwonna
89~90p
[내레이터]
(중략)
맨살의 두 팔을 올려 올림머리를 풀면
검붉은 긴 머리칼들이 와락 흘러내려
백옥같이 하얀 피부로 흩어졌지.
내가 당신에게 수의를 입혔어!
내가 수의를 입혔다고!
불구덩이에 밀어 넣기 전에 당신에게 수의를
입히는 일만은 누구에게도 맡기지 않았다고!
마지막에 남는 건 고통뿐이더군!

결국 오롯이 고통만 남더라고!
결국에, 마침내, 마지막에 남는 건 고통이야!
고통 자체가 여정 같은 거라서 그래.
바람직한 여정, 생각보다 아주 괜찮은
여정이야, 고통이란 게!
뭔가에 홀린 듯한 경이로운 여정이지!
08.31 15:40
6
kwonna
95~96p
[시미언]
죽은 사람들 앞에서 죽은 사람들에 관해
말하면 안 돼.
귀가 아직 듣고 있거든.
그들과 관련된 노래는 추억에 자기를 띠게 해
모든 고통을 목구멍 속으로 끌어들여.
무슨 수를 써도 그들을 즉시 땅에 묻을 수 없어.
무슨 수를 써도 그들을 타오르는 불길에 낮김없이 태울 수 없어.
무슨 수를 써도 그들을 완전히 물 속에 가라앉힐 수 없어.
손으로 흩뿌리는 유해가 수련 옆으로 퍼져 나갈 뿐이야.

흐르는 물에 흐르는 눈물을 보태야 해.
노래에 침묵을 보태듯이.
웅비하는 동시에 스러지는 바람을 대기에 보태듯이.
지팡이의 둥근 끝부분과 철제 덧문에 천천히
녹이 슬어 가루가 더께로 앉듯이.
그러면 어느 날 망각이 그들을 덮치고,
허공이 그들의 이름을 집어삼키고
시간이 그들을 사라지게 할 거야.
08.31 15:46
7
kwonna
118p까지 읽음
08.31 15: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