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전혀 해보지 않은, 이제 노화라는 인생의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는 낯선 생각이 머릿속에 퍼뜩 떠올랐다.
"이자벨, 그게 바로 늙는다는 거야. 아직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노화가 앞으로 점점 더 큰 자리를 차지할 테니 잘 받아들여야 할 거야!" 몸이 단언하듯 명백한 사실을 들이밀기 전까지는 한 번도 노화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내 안의 모든 것이 이 지엄한 사실에 저항해왔다. 나는 늘 신체적, 심리적 난관을 성공적으로 극복해왔다고 자부했으며, 내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준 독립심과 자유로운 정신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는 어떻게 존재하는지조차 알지 못했괘,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 새로운 상황과 대면해야 했다.
08.31 13:24
2
kwonna
35~36p
나는 자유의 이름으로, 나에게 어느 정도의 안정과 지속성을 보장해줄 수도 있었을 모든 겟, 가령 아파트며 도시, 각종 물건 따위를 뒤로했다.
이사를 할 때마다 (솔직히 엄청 여러 번 이사했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고, 사소한 추억거리조차 간직하지 않고 모든 것과 작별했다. 나는 애착을 족쇄처럼 여겼으며, 그런 족쇄 따위는 전혀 원하지 않았다.
(중략)
나는 물질적, 정신적 홀가분함을 삶의 방식으로 삼았으며, 이는 오늘날까지도 나를 물고 늘어진다. 저녁에 친구 집에 모이면, 자연스럽게 스마트폰과 그 안에 담긴 일련의 사진들이 화젯거리로 등장한다.
저마다 자기 할머니 할아버지 사진, 이어서 부모님 사진 그리고 최근에 찍은 자식 사진과 손주들의 사진을 차례로 주고받는다.
모두 공유하고 감탄사를 연발하며 이런저런 질문을 해 댄다. 그런데 난 보여줄 사진이 한 장도 없다.
08.31 13:34
3
kwonna
66p
뭔가 아주 사소한 동작 하나를 하려 해도,보이지 않는, 탈물질하한 권력의 가학적인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형편이니, 나는 나의 무지 앞에서 한없이 위축된다. 점점 더 쪼그라드는 세상에 갇혀버린다.
젊은 사람들은 이런 세상에서 능숙하게 항해한다. 모두 지름길을 꿰고 있으며, 숨이 멎을 정도로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린다.
젊은 사람들은 나에게 몇 시간씩 불안감을 안겨주는 것의 정체를 이해하지 못하며, 예전엔 기계음 외의 다른 대안도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아마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얼마나 자기들에게만 속하는
세상, 그들의 선배들은 더는 뭐가 뭔지 통제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그들이 살아가고 있음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
08.31 13:48
4
kwonna
90p
"그날들은 갔다네, 친구들이여. 우리는 그날들이 결코 끝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건만."
-진 래스킨, 메리 홉킨
08.31 13:59
5
kwonna
102~103p
유토피아 건설의 꿈, 고리타분한 세상에 대한 거부, 그때까지 아무도 해보지 못했던 당돌한 실험, 연대의식, 이런 모든 것이 뒤죽박줄 뒤섞인 위로 양념처럼 더해진 우리의 분노와 취기, 음악과 요란한 연회, 도발과 질풍노도, 완전히 고삐 풀린 향락이라니.
이제 와서 무질서하고 광란에 젖어 있던 그 시절, 말도 안 되게 밀도 높았던 나의 젊은 시절의 추억을 모른 척하기란 참으로 어렵기 짝이 없다!
나는 늙은이가 되어버린 그 여름에 불현듯 맛본 그 향수를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거의 아무도 그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며, 대개는 관심조차 없다.
나는 늙는다는 건 바로 이런 것이기도 하다고, 다음 세대들에게는 폐기 처분해야 마땅할 것으로 보이는 나의 젊은 시절을 한껏 이상화하며 되새김질하는, 그런 것이기도 하다고 속으로 삭였다.
08.31 14:07
6
kwonna
143p
늙은이가 되기 전엔, 나는 아버지 역시 당신이 버림받았다고 느꼈으리라는 걸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08.31 14:20
7
kwonna
151p
지금보다 더 젊고, 지금보다 훨씬 더 자주 여행을 다니던 때, 우리의 짐 가방엔 책이 가득했다. 그런데 지금은 약 봉투가 가득한 가방을 끌고 다닌다.
스무 살 때, 우리는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서른이 되지 일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마흔이 넘자 청소년에 대한 이해 불가능성, 커플의 어려움 등을 하제에 올렸고, 쉰 줄에 들어서자 리프팅을, 예순이 되면서는 퇴직과 각종 계획(여행, 자원봉사, 요가 등)이 수다의 단골 주제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08.31 14:24
8
kwonna
158~159p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내 친구들도 모두 늙었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가혹하다고 싫어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는 친구들이 예전에 보여주었던 싱싱함, 섬세한 이목구비, 탱탱한 볼과 환한 미소를 지금 모습과 연결 짓기가 너무 힘들다.
전에 비해 훨씬 느려진 친구들의 굼뜬 동작, 신뢰하기 어려운 기억, 흔쾌하지 못한 희미한 미소, 주름지고 늘어진 목을 관찰하노라면, 그 친구들이 예전에 지녔던 열정, 거머쥔 문학적 성공, 모험 정신으로 충만했던 우리의 여행, 활기 넘치던 우리의 회합을 생생하게 추억하는 데 애를 먹는다.
08.31 14:28
9
kwonna
186p
나는 어떻게 사람들이 분명 살아 있다가 갑자기 사라질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모든 것은 그대로일 것이라고, 가령 계절은 여전히 바뀔 것이고, 도시며 산, 바다도 계속 존재할 테고, 축하받을 일들을 계속 축하받을 것이고, 예술도 영속할 테지만, 그 사실을 증언해야할 나, 나만 거기에 없을 거라니.
나는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한 행동, 내가 저지른 실수, 내가 한 노력, 나의 투쟁, 내가 거둔 승리, 내가 느낀 슬픔, 내가 받아들인 모헴, 내 생각, 내가 쏟아낸 말, 이 모든 것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08.31 14:37
10
kwonna
187p
지난 70년 세월 동안 나는 그럭저럭 살 생각만 해왔다. 그런데 지금 와서 그 여정의 끝을 상상하려니, 그냥 상상이 안 된다. 모든 것이 뒤에 공백만 이어질 거라니. 침묵. 그러면서도 약간의 호기심이 가미된 불안한 마음으로 묻지 않을 수 없다. 그게 어떻게 올까?
죽음. 나에게 현실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죽음이 내가 늙은이가 되어버린 그 여름 이후 줄곧 나를 따라다닌다. 나는 자살을 생각한다.
그것이 적어도 하나의 선택이 돌 수 있다고, 자살은 말하자면 하나이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고, 가령 질병이나 그로 인한 의존적인 삶을 피해 도피할 수 있는 말미를 준다고 우겨 본다.
08.31 14:40
11
kwonna
194p
줄줄이 이어지는 이른바 내 인생의 배드 보이들 가운데 최초의 인물. 그들과 어울리면서 니는 진정한 반항, 즉 여자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덕목엔 들어가지 않는 반항이란 무엇인지 이해했다.
08.31 14:43
12
kwonna
209~213p
1979년 푸에르토리코의 한 수영장 주변에서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짝이 되어줄 수 없는 사람임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논리적이고 실용적이며 효율을 중시하는 합리적인 미국인이었다. 그는 크고 안락한 것, 유명 상표 제품을 좋아했다.
반면 무엇이 되었든 나는 튀지 않는 은근한 것, 내가 받은 교육에 따르면 '좋은 취향'을 선호했다.
(중략)
그는 우리가 자주 파리에서 휴가를 보냈음에도 프랑스어라고는 한 마디도 배우지 않았다.
08.31 14:52
13
kwonna
215p
그는 나에게 사소한 것들로 속 끓이지 않고, 뒤로 한 발짝 물러나 거리 두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는 또한 나에게 모든 문제는 다 해결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중략).
그와 함께 있으면, 나는 안전했다. 그리고 앞으로 무슨 일이 생겨도 나는 늘 안전하리라는 걸 나도 잘 알았다. 그는 무엇보다도 특유의 유머 감각을 전수해 주었다.
젤망에 빠지는 빈도가 잦아지면서, 나 자신의 절망을 바라보며 웃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뉴욕에 사는 유대인으로서 그가 구사하는 유머는 그가 나에게 선사한 가장 소중하고 가장 항구적인 선물이었다.
"이자벨, 그게 바로 늙는다는 거야. 아직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노화가 앞으로 점점 더 큰 자리를 차지할 테니 잘 받아들여야 할 거야!" 몸이 단언하듯 명백한 사실을 들이밀기 전까지는 한 번도 노화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내 안의 모든 것이 이 지엄한 사실에 저항해왔다. 나는 늘 신체적, 심리적 난관을 성공적으로 극복해왔다고 자부했으며, 내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준 독립심과 자유로운 정신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는 어떻게 존재하는지조차 알지 못했괘,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 새로운 상황과 대면해야 했다.
이사를 할 때마다 (솔직히 엄청 여러 번 이사했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고, 사소한 추억거리조차 간직하지 않고 모든 것과 작별했다. 나는 애착을 족쇄처럼 여겼으며, 그런 족쇄 따위는 전혀 원하지 않았다.
(중략)
나는 물질적, 정신적 홀가분함을 삶의 방식으로 삼았으며, 이는 오늘날까지도 나를 물고 늘어진다. 저녁에 친구 집에 모이면, 자연스럽게 스마트폰과 그 안에 담긴 일련의 사진들이 화젯거리로 등장한다.
저마다 자기 할머니 할아버지 사진, 이어서 부모님 사진 그리고 최근에 찍은 자식 사진과 손주들의 사진을 차례로 주고받는다.
모두 공유하고 감탄사를 연발하며 이런저런 질문을 해 댄다. 그런데 난 보여줄 사진이 한 장도 없다.
젊은 사람들은 이런 세상에서 능숙하게 항해한다. 모두 지름길을 꿰고 있으며, 숨이 멎을 정도로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린다.
젊은 사람들은 나에게 몇 시간씩 불안감을 안겨주는 것의 정체를 이해하지 못하며, 예전엔 기계음 외의 다른 대안도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아마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얼마나 자기들에게만 속하는
세상, 그들의 선배들은 더는 뭐가 뭔지 통제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그들이 살아가고 있음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
-진 래스킨, 메리 홉킨
이제 와서 무질서하고 광란에 젖어 있던 그 시절, 말도 안 되게 밀도 높았던 나의 젊은 시절의 추억을 모른 척하기란 참으로 어렵기 짝이 없다!
나는 늙은이가 되어버린 그 여름에 불현듯 맛본 그 향수를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거의 아무도 그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며, 대개는 관심조차 없다.
나는 늙는다는 건 바로 이런 것이기도 하다고, 다음 세대들에게는 폐기 처분해야 마땅할 것으로 보이는 나의 젊은 시절을 한껏 이상화하며 되새김질하는, 그런 것이기도 하다고 속으로 삭였다.
스무 살 때, 우리는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서른이 되지 일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마흔이 넘자 청소년에 대한 이해 불가능성, 커플의 어려움 등을 하제에 올렸고, 쉰 줄에 들어서자 리프팅을, 예순이 되면서는 퇴직과 각종 계획(여행, 자원봉사, 요가 등)이 수다의 단골 주제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전에 비해 훨씬 느려진 친구들의 굼뜬 동작, 신뢰하기 어려운 기억, 흔쾌하지 못한 희미한 미소, 주름지고 늘어진 목을 관찰하노라면, 그 친구들이 예전에 지녔던 열정, 거머쥔 문학적 성공, 모험 정신으로 충만했던 우리의 여행, 활기 넘치던 우리의 회합을 생생하게 추억하는 데 애를 먹는다.
모든 것은 그대로일 것이라고, 가령 계절은 여전히 바뀔 것이고, 도시며 산, 바다도 계속 존재할 테고, 축하받을 일들을 계속 축하받을 것이고, 예술도 영속할 테지만, 그 사실을 증언해야할 나, 나만 거기에 없을 거라니.
나는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한 행동, 내가 저지른 실수, 내가 한 노력, 나의 투쟁, 내가 거둔 승리, 내가 느낀 슬픔, 내가 받아들인 모헴, 내 생각, 내가 쏟아낸 말, 이 모든 것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죽음. 나에게 현실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죽음이 내가 늙은이가 되어버린 그 여름 이후 줄곧 나를 따라다닌다. 나는 자살을 생각한다.
그것이 적어도 하나의 선택이 돌 수 있다고, 자살은 말하자면 하나이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고, 가령 질병이나 그로 인한 의존적인 삶을 피해 도피할 수 있는 말미를 준다고 우겨 본다.
그는 논리적이고 실용적이며 효율을 중시하는 합리적인 미국인이었다. 그는 크고 안락한 것, 유명 상표 제품을 좋아했다.
반면 무엇이 되었든 나는 튀지 않는 은근한 것, 내가 받은 교육에 따르면 '좋은 취향'을 선호했다.
(중략)
그는 우리가 자주 파리에서 휴가를 보냈음에도 프랑스어라고는 한 마디도 배우지 않았다.
(중략).
그와 함께 있으면, 나는 안전했다. 그리고 앞으로 무슨 일이 생겨도 나는 늘 안전하리라는 걸 나도 잘 알았다. 그는 무엇보다도 특유의 유머 감각을 전수해 주었다.
젤망에 빠지는 빈도가 잦아지면서, 나 자신의 절망을 바라보며 웃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뉴욕에 사는 유대인으로서 그가 구사하는 유머는 그가 나에게 선사한 가장 소중하고 가장 항구적인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