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끝내주는 괴물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독서가 알베르토 망겔이 추억하는
신화와 전설, 문학 작품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상상의 친구들

“한 애서가가 자신이 잊지 못하는 캐릭터들에게 바치는 말과 그림들”
《뉴욕 타임스 북 리뷰》

총 37편의 짧은 에세이로 구성된 이 책은 동화와 코믹북, 신화, 전설, 고전을 망라하는 텍스트들에서 길어 올린 문학 작품 속 캐릭터들의 이야기와, 이들이 주는 메시지를 토대로 사유한 저자의 풍부한 통찰을 담고 있다.
1
kwonna
짬짬이 읽으려고 도서관에서 빌렸는데 짬이 안 나서 못 읽고있다가 도서 연체가 되는 바람에 빨랑 읽어보기로.
점심시간에 드문드문 봤을 땐 재밌었음.
01.11 23:45
2
kwonna
13p
우리는 살과 피로 이루어진 동물들의 자손이라지만, 우리는 내심 우리 자신이 잉크와 중이로 이루어진 유령들의 아들딸이라고 여긴다.
01.11 23:47
3
kwonna
19p
나는 늘 인생을 수많은 책의 책장을 넘기는 행위로 생각했다. 나의 내밀한 경험들은 거의 다 내가 읽은 책들이 만들어 준 상상 속 지도로 규정되고, 삶에서 필수적인 것들에 대해 내가 안다고 믿는 지식은 거의 다 특정한 단락이나 문장에서 연원한다.
01.11 23:49
4
kwonna
47~49p -드라큘라
스토커의 소설은 모든 면에서 피투성이다. 까마득한 세월을 살아온 백작의 현관에는 귀족의 피가 흐른다고 하고, 그런데 이 괴물이 빈혈에 시달려서 밤마다 피를 마셔야 한대고, 사탄 숭배 의식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욕보인다는 암시가 나오는가 하면, 산업혁명 시대에 태어난 중산층 평민의 피를 먹고 사는 권력자의 면모가 드러나기도 한다. 그리고 인간의 몸에는 피하의 혈액이 바깥 세상으로 나오는 출구가 있는데, 분수대의 주둥이와도 같은 곳, 생명의 분출구이자 오르가슴의 반향실인 그곳은 다름아닌 목이다.

(중략)

인간의 모든 신체 부위 중에서도 어째서 유독 이 한 군데, 몸통과 머리를 잇는 필수적 통로만이 유혹자의 십술, 암살자의 손, 처형인의 도끼와 괴물의 송곳니를 모두 끌어당기는 것인가? 이 섬세하고 예민한 부위가 무방비하게 노출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기에 에로틱한 폭격, 더 나아가 폭력 자체의 대상이 되는 것인가?

(중략)

드라큘라 백작은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죽음의 저주에 걸렸다는 것을 알기에 생명의 근원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청소년들의 꿈속에 드라큘라 백작의 음울한 그림자가 맴도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아이들은 성년에 접어드는 과정에서 어른들의 악행을 자신들도 저지르게 되리라는 것을 고대하고 또 두려워 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노인들의 꿈에도 백작의 그림자는 늘 드리워져있다. 우리는 인생의 끝자락에 다다르면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즉 팽팽한 살결, 젊은 입술의 온기, 뜨거운 피의 맥동 같은 것을 그리워하기 마련이므로.
01.12 00:02
5
kwonna
54~59p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상한 나라는 그저 우리가 나날이 살아가는, 천국 같고 지옥 같으면서 연옥 같은 일상이 펼쳐지는, 삶을 헤쳐나가려다보면 반드시 헤쳐나가야하는 미친 세상, 바로 그곳이다. 앨리스가(그리고 우리가) 이곳을 여행하면서 쓸 수 있는 무기는 단 하나, 언어뿐이다. 체셔 고양이의 숲도, 하트 여왕의 크로켓 경기장도 언어를 이용해 통과한다. 앨리스가 눈에 보이는 것들의 겉모습과 본질 사이의 차이를 발견하는 것도 언어를 통해서다. 우리 세상과 마찬가지로 이상한 나라의 광기 역시 관습적인 예절이라는 얇은 덮개 아래 감춰져 있지만, 앨리스의 질문들이 그 광기를 들춰내고야 만다.

(중략)

그러나 우리 ㅔ상은 이상한 나라에서와 같이 명백한 광기가 벌어지는데도 거기에 무언가 의미가 있긴 있을 거라고,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납득 가능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암시하며 우리를 애태운다.
01.12 00:10
6
kwonna
65p - 파우스트
영혼을 파는 행위가 온 세상이 들썩거릴 만큼 중대한 사건이었던 옛날에는 메피스토펠레스가 이기든 지든 간에 그의 업무 자체는 수월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영혼의 인기가 땅에 떨어진 나머지 사람들이 송유관 건설 계약이나 상원 의원석 같은 하찮은 것들을 얻기 위해 매일같이 영혼을 팔고 있으니, 메피스토펠레스의 과업은 역설적이게도 과거보다 훨씬 어려워진 셈이다. 우리가 영혼을 하찮은 것과 맞바꾸다 보면 영혼의 가치도 하찮아지기 마련인데, 천부적 고리대금업자인 메피스토펠레스는 귀중한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01.12 00:18
7
kwonna
69p
그 애가 행복할 때라고는, 아니 '행복'은 너무 강한 표현이고 그나마 덜 우울할 때는 다른 젊은 남자들과 같이 있을 때뿐이다.
01.12 00:19
8
kwonna
86~89p - 돈 후안
쾌락을 체계화하고, 규칙적인 정복 활동의 일환으로 삼고, 애인의 이름을 '할 일 목록'에 넣고 체크 표시를 하기. 애욕을 죽이는 데에는 상당히 효과적인 방법이다. 돈 후안은 연인이라기보다는 유혹자이고, 유혹자라기보다는 수집가이며, 수집가라기보다는 저격수에 가깝다.

(중략)

여기서 우리는 돈 후안의 모국어가 스페인어라는 것, 그리고 스페인어에서 죽음은 여성형 명사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돈 후안이 최후의 만찬에 군대장의 ㅇ령을 소환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 죽음 또한 만찬에 참여할 테고, 그는 진정한 신사답게 그녀를 집까지 에스코트해줄 수 있을 테니까.
01.12 00:27
9
kwonna
103~104p - 방랑하는 유대인
방랑하는 유대인 전설은 명백한 반유대주의에 기반하지만, 그 점을 차치하고 보면 징벌로서의 여행이라는 개념 자체는 흥미롭다.

(중략)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라면 네덜란드선이나 유대인의 끝없는 여행이 징벌이라는 시각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 공항 수속과 보안 절차를 둘러싼 히스테리에 대해서라곤 상상도 못 했을 그는 "희망을 갖고 여행하는 것이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 낫다"고 주장하 바 있다.

(중략)

그러나 스티븐슨식 여행관에는 어두운 측면이 존재한다. 예수가 유대인에게 벌을 주기로 마음먹었을 때 염두에 둔 것도 바로 그 점이었을지 모른다. 그 관점에서 보자면 유대인이 받은 저주는 여행이 아니라 도주가 된다. 그는 집단 학살이나 굶주림이나 실직난을 피하기 위해 집을 떠나야 한다. 강제 수용소, 굴라크, 용병, 다국적 석유 횟, 삼림 남벌 업자, 가뭄과 홍수, 군사적 또는 종교적 독재 정권으로부터 도망쳐야 한다.
01.12 00:35
10
kwonna
109p - 잠자는 숲속의 공주
천국에서의 시간에는(신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지속성이라는 개념이 없다고 한다. 한 순간마다 그곳에서 가능한 모든 것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반면 지옥의 시간은 영원히 지속되는데, 그곳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희망이 없는 세계에서는 기약 없는 기다림 외에는 아무것도 일어날 수 없다. 카를 구스타프 융이 회고하기를, 언젠가 길거리에서 마주친 삼촌이 자기를 멈춰 세우며 "신이 죄인들을 어떻게 고문하는지 알아?"라고 묻기에 고개를 저었더니, "기다리게 만드는 거야"라고 답하고는 갈 길을 갔다고 한다.

공주의 잠. 그것은 천국에서의 잠일까, 지옥에서의 잠일까?

만약 천국에서 잠들어 있다면 그녀는 아름답고도 한없이 순수한 공주로서 푸른 옷을 입은 왕자들에게 한없는 갈망의 대상이 되며 행복할 테고, 그 끊임없는 현재를 중단하고 깨어날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반면 지옥이라면 공주는 순수가 끝나기 직전의 순간 속에 잠들어 있는 셈이다. 곧 왕자가 도착해 공주를 깨워 시간의 굴레로 밀어 넣으면, 그녀는 그동안 바깥세상에서 흐른 세월을 단숨에 따라잡아야 할 것이다.
01.12 00:40
11
kwonna
143~144p - 키마이라
괴물들은 우리가 존재하기를 원하기에 비로소 존재한다. 아마도 그들의 존재가 우리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리라.

키마이라는 합성 괴물의 원형이다.호메로스는 키마이라를 "인간이 아닌, 불멸성을 가진 것/ 앞은 사자이고 뒤는 뱀이고 가운데는 염소이며/환한 섬광을 무시무시하게 내뿜는 것"이라고 묘사했다.

(중략)

키마이라는 생명체라기보다는 상징이 되었다. 로버트 그레이브스에 따르면 키마이라는 그리스인들이 한 해를 세 계절로 나누는 달력에 사용하던 상징으로, "사자 , 염소, 뱀이 각각의 계절을 뜻했다"고 한다. 우리 싣에 키마이라는 있을 수 없는 것의 표상, 상상만 할 뿐 결코 성취할 수 없는 무언가(고통 없는 삶이라든지, 모두에게 공정한 사회 같은 것)를 일겉는 이름으로 통한다.
01.12 00:52
12
kwonna
158p
단 하나의 진정한 외계는 우리 몸이다. 다른 공간은 모두 탐험이 가능하다. 아무리 먼 별도, 아무리 깊은 바닷속 골짜기도 인간의 호기심 앞에 열려 있는데 반해, 소위 우리 것이라는 몸은 순전히 믿음에 맡김으로써만 우리 것일 수 있다. 거울을 톰해 우리 얼굴을 확인할 수 있지만 그나마도 좌우가 뒤바뀐 모습만 볼 수 있고, 우리 뒷모습은 달의 뒷면만큼이나 미지의 영역이다. 성인 인간의 피부는 약 1.5제곱미터에서 1.9제곱미터 면적이라는데, 우리가 자기 피부에서 볼 수 있는 부분은 3분의 1도 채 안 된다.
01.12 09:53
13
kwonna
173p
산토스 반데라스를 포위하는 이들도 복잡하고 입체적인 인물들이지만, 여기서 누구보다도 강력하게 생동하는 존재들은 반데라스 주위로 떼 지어 몰려드는 익명의 군중이다. 군인, 원주민, 매춘부, 하인, 죄수, 소작농, 외교관, 정치인들이 하나가 되어 폭군 곁에 항상 존재하는 유기적인 괴물을 형성한다.

21세기에 들어 우리의 경험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은, 트위터로든 육성으로든 사람들을 윽박질러 힘을 거머쥐는 폭군 밑에는 반드시 그를 경솔하게 떠받들어주는 자기희생적 지지층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01.17 20:43
14
kwonna
180p
편견은 복잡성을 외면하기 마련이므로, 아랍어를 구사하는 다양한 계통의 사람들이 모두 '무어인'이라는 명칭으로 축소되었다. 스페인의 '옛 그리스도인'이 무엇인가 하는 정의와 상관없이, 무어인들은 추방된 지 오래됐든 오래 안 됐든, 기존의 종교를 따르든 기독교로 개종했든 무조건 적으로 간주되었다.
01.17 20:43
15
kwonna
190~193p -욥
마이모니데스가 [방황하는 자들을 위한 안내서]에서 설명하기를, 철학자들(정확히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신은 인간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 하나하나를 알지 못하며 알 수도 없다고 한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세부적인 것의 지식은 감각으로 습득되고(신은 몸이 없으니 육체적 감각도 없다), 세부적인 것의 수는 무한하며(무한이란 그 정의상 신조차 알 수 없는 것이다), 세부적인 것이란 시간의 산물이라 시시각각 변화하기에 그것에 대한 신의 지식 역시 변해야 하기 때문이다(그러나 신은 변화하는 존재가 아니다).

마이모니데스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신의 불공정이나 무력함보다는 다만 무지함을 탓하고 있다고 말한다. 욥의 신은 그가 당하는 고통의 세부를 모르며, 그의 자식을 하나하나 셀 수도, 낙타 한 마리 한 마리를 검사할 수도 없기 때문에 그런 고통을 주었다는 것이다.

(중략)

성경에서 욥은 끝에 가서는 이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좀 다르다. 욥은 눈에 보이는 보상도 없이 끝없는 고통만을 당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붇지 않을 수 없다. 욥이 대체 언제까지 견뎌야 하는가? 얼마나 더 많은 것을 빼앗기고 나서야 욥은 이 모든 불공정이 결단코 용납 불가능한 일이었음을 인지할까? 언제쯤에야 욥은 로마인 재판관처럼 "쿠이 보노"라고, 즉 이 모든 일에서 누가 이익을 얻느냐고 물을 것인가?

그의 가축, 땅, 노동의 결실을 누가 소유하는가? 그의 자녀들은 누구 때문에 죽었는가? 사람은 언제쯤 권력자의 독단적 결정에 맞서 자신을 변호할 의무가 생기는가? 얼마나 더 많은 권리를 빼앗기고 나서야 욥은 "이만하면 충분해"라고 말할 것인가?

사탄의 내기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01.17 20:43
16
kwonna
210p
소설 중반에서 커소번이 심장마비로 사망하기 전날, 그는 도러시아에게 자신이 죽고 나면 소원(정확히 무슨 소원인지는 밝히지 않는다)을 이뤄주겠다고 약속해달라 부탁한다. 하지마 그녀는 산 사람에게 헌신하는 것과 죽은 사람에게 무기한으로 헌신하겠다 약속하는 것 사이에는 크나큰 차이가 있다고 여기기에 차마 그럴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불행한 운명을 안기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01.17 20:44
17
kwonna
217~220p- 사탄
욥 그리고 사막에서 고행하던 신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경고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저 하느님을 감히 유혹할 만큼 교활하기도 하다. 그는 신의 빛에 따르는 어둠이고, 신의 창조력에 반하는 파괴력이며, 진리를 대체하는 또 다른 진리이다.

(중략)

밀턴은 사탄을 뫼비우스의 띠 같은 것이라고 상상했다("어느 쪽으로 날아가든 지옥이다. 나 자신이 지옥이므로"). 괴테는 약간의 연민을 담아, 사탄이 비참한 존재이고 "비참은 동반자를 찾기 마련이므로" 인간을 유혹하는 것이라는 설을 제시했다.

(중략)

다시 단테의 주장을 소개하자면, 그는 우주의 모든 것이 신의 사랑에서 비롯된 결실이므로 죄악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 관점에 의하면 사탄은 신이 투사하는 사랑을 왜곡하거나 비트는 존재로서, 인간들에게 과도한 사랑을 부추겨 욕정이나 탐욕, 식탐을 일으키거나, 반대로 불충분한 사랑 때문에 나태에 시달리게 하거나, 사랑을 부적절한 대상으로 돌려 질투, 분노나 교만을 유도한다.
01.17 20:44
18
kwonna
232~235p - 네모 선장
nemo(라틴어), naide(스페인어), niemand(독일어), nessuno(이탈리아어)… 이처럼 스스로를 부정하는 정체성의 이름은 거의 모든 서양 언어에서 n으로 시작한다.

(중략)

모든 서재에는 자서전과 같은 성질이 있다. 그렇다면 네모 선장의 서재에서는 그 주인의 숨겨진 정체성이 일부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01.17 20:44
19
kwonna
240p
피타고라스 사상의 전통에 따르면 모든 생명체에게는 그와 똑같은 존재가 있거나, 있었던 적이 있거나, 있을 거라고 한다. 토머스 브라운 경은 이렇게 적었다. "모든 사람은 단지 그 자신만이 아니다. 이제까지 많은 디오게네스가 있었고 또 많은 티몬이 있었다. 비록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은 소수였지만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삶을 다시 살고 있고, 지금의 세상은 오래전에 이미 존재했던 세상이다. 당시에는 그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어도, 그 사람과 매우 유사한, 이를테면 되살아난 자아라고 할 만한 사람이 있었다."
01.17 20:44
20
kwonna
259p
부패한 사회에서 증오받지 않는 것만큼 불운한 일도 없다.
01.17 20:45
21
kwonna
263~264p - 요나
니네베에서 풍요롭게 사는 예술가들이 소수이지만 있기는 있었다(그리고 예술가를 지칭하며 풍요롭게 사는 사기꾼은 많았다).

니네베 사회는 자기네가 소비하는 상품을 만들어낸 소수의 제작자들에게 기꺼이 보상을 했다. 물론 그런 성공이 가능했던 것은 수많은 예술가들의 용감한 시도와 영웅적인 실패 덕분이었지만 니네베 사회는 그런 대다수의 예술가를 인정하지 않았다. 즉각적으로 마음에 들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 무언가를 지지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 대다수의 예술가들은 어차피 자기네가 하던 일을 계속할 터였다. 밤이면 밤마다 영혼의 충동질에 시달리니 도저히 일을 안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어떤 수단이든 동원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곡을 만들고 춤을 췄다.

(중략)

"예술가는 사회의 여느 노동자와 다릅니다. 예술가는 현실을 다루는 일을 한단 말이에요. 그건 내적, 외적 현실을 의미 있는 상징들로 변환하는 일입니다.

반면 돈을 다루는 사람들은 아무 의미 없는 상징을 다루고 있죠. 니네베에 수없이 많고 많은 주식 중개인들은 멋대로 오르락내리락하는 수치들을 꿈속에서 자기네 재산으로, 그러니까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재산으로 변환하고는 그것이 현실이라고 믿습니다.

생각해보면 참 놀라운 일이죠. 그 어떤 판타지 작가나 가상현실 예술가도, 주식 중개인 모임에서 그토록 만연하게 퍼지는 믿음을 자기네 독자나 관중에게 불러일으킬 생각은 감히 하지 못할 겁니다."
01.17 20:45
22
kwonna
283~285p -웬디고
그들은 그 괴물을 웬디고, 또는 윈디고, 위타코, 위티카라고 부르며(이 이름을 적는 철자법만 서른여덟 가지라고 한다). 다른 부족들 사이에서는 아트첸이라든지 웨추게 같은 다양한 이름이 쓰인다. 1743년 상인 제임스 아이셤은 그의 이름을 '화이트코'라고 적고 '악마'라고 뭉뚱그려 번역했다.

(중략)

웬디고라는 소름 끼치는 존재가 나타난 것은 북극 극지대의 새하얀 빙원 탓이었을까, 아니면 우리 자신의 마음에서 비롯된 존재인데 우리가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두려워 저 텅 빈 설광으로 악몽을 내몰았을 뿐일까?

아랍 사막에는 신기루가 있고, 아일랜드의 초록 언덕에는 레프러콘이 가득하며, 한없이 깊은 바닷속에는 최후의 나팔 소리가 들렸을 때에야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낼 크라켄이 살고 있다.

한편 캐나다에는 우리가 학교 지리학 수업에서 상상하는 그 나라의 모습과 비슷하게도 거대하고 순백색을 띤 괴물이 있다. 캐나다는 그 친절한 자아 이면에 존재하는, 불확실하고도 은밀하고 섬뜩한 그림자에게 쫓기는 것을 선택한 셈이다.
01.17 20:47
23
kwonna
315~316p-에밀
"우리는 아동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루소가 책의 서문에 쓴 이 비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 어른들은 어린 에밀에게서 우리가 되고 싶어했던 인간상의 실패를 발견한다. 때로는 아이들이 우리에게 결여된 미덕을 갖추기를, 그리고 우리의 결함은 닮지 않기를 바란다.

또한 아이들이 우리 시스템을 작동하는 데 효과적인 톱니바퀴가 되도록 가르치고 순종적인 자세를 훈련시킨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것만 생각하며, 아이들의 야망보다는 탐욕을, 지성보다는 영악함을 부추긴다.

"신의 손에서 떠난 모든 것은 선하다. 그러나 사람의 손에 들어온 모든 것은 타락한다." [에밀]의 첫 단락은 이렇게 시작한다. "사람들은 자기 개, 말, 노예를 해친다. 모든 것을 넘어뜨리고, 모든 것을 망가뜨린다. 그들이 기형을 사랑하고, 식인귀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자연이 만든 그대로 내버려두고 싶어 하질 않는다. 심지어 인간조차도 말이다."
01.17 20:48
24
kwonna
328~332p - 웨이크필드
우리 모두가 한 번쯤은 자기 삶과 완전히 다른 삶을 꿈꿔본 적이 있지 않을까 싶다. 월터 미티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날이 살아가는 일상보다야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삶이 여러모로 더 생소하고 중요하게 느껴지곤 한다. 갈라진 반쪽 자아가 나머지 반쪽을 찾아 헤맨다는 플라톤식 신화는 사람들이 꽤 흔하게 겪는 일인 것 같다.우리가 될 수 없는 자아의 경험을 갈망하는 셈이라고 할까.

(중략)

우리 불가사의한 세상의 수라장 한가운데서 개인들은 아주 말끔하게 시스템에 적응하고, 시스템들은 서로 맞물리면서 총체를 이룬다. 그 총체에서 잠깐이라도 발을 뺀 사람은 자기 위치를 영원히 잃을 무시무시한 위험에 처하게 된다. 웨이크필드처럼 우주의 추방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01.17 2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