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님이 본인이 개인소장한 DVD로 점심시간마다 상영회를 열어주셔서 다 봤다.
1기 초반과(너무 잔잔해서...) 2기 초반(진도가 너무 느려서...)에서 리타이어했을 가능성이 높아보임.
다 보고 난 뒤 생각해보면 역시 좋은 작품이었다 싶다.
발레라는 요소를 통해 말보다 행동과 몸짓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그 모습이 아히루라는 캐릭터와 너무나 잘 어울렸고, 작품 전반에 깔린 따스하지만 비극적인 감정선이 오스카와일드의 동화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음.
01.26 17:28
2
kwonna
마지막 결말은 정말 아히루한테 너무하잖냐~~싶긴 한데, 오히려 해피엔딩이 아니었기에 더 좋은 작품이라는 걸 부인할 순 없다.
"운명을 받아들이는 자에게는 행운이 있으리, 운명을 거역하는 자에게는 영광이 있으리."
처음엔 어떤 선택을 하든 응원하겠다는 말인가~ 했는데, 결말까지 다 본 후 생각해보니 '운명에서 도망치지 마라'라는 의미였을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아히루의 운명은 프린세스 츄츄가 아닌 오리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었고, 뮤토나 화키아, 루우에게도 드롯셀마이어가 안배한 각자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 츄츄는 그 운명을 직시하지 못하던 이들이 결국 운명을 거역하거나(루우), 받아들이는(아히루) 이야기이다.
모두 자신의 운명을 직시했기에, 이 이야기는 끝날 수 있었던 것이다.
01.26 17:33
3
kwonna
뮤토를 위해 싸우던 아히루는 마지막에 뮤토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마을을 원래대로 돌려놓겠다고 말한다. 그 변화의 과정을 우리는 모두 보았다. 영웅적인 면모를 가지고 사랑과 의지로 모든 시련을 이겨낸 게 아니다. 망설이고, 상처받고, 위로받으며 전진한 결과이다. 오리로서의 끝을 맞이하는 것까지.
나와는 다른 영웅적인 인물이 아니라 평범한 나와 똑같은 이일지라도, 끝없이 흔들리고 갈등하면서도 결국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행동할 수 있는 모습을 보면 속절없이 감동하게 된다. (엑시트도 그렇고...)
01.26 17:40
4
kwonna
나쟈와 우테나, 츄츄의 비교분석
둘은 위에서 베푸는 삶과 아래에서 빼앗는 삶을 비교하며 어느쪽이 더 나은 것인지 시청자들이 고민하게 만들죠. 이들의 삶 역시 신분제의 모순으로 벌어진 비극입니다. 모두가 평등하게 살 수 있었다면 이런 문제 역시 벌어지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래서 나쟈는 귀족이 아닌 신 여성의 길을 걷습니다. 그 모순을 타파하기 위해서. 설사 그게 100년 후의 일이라 할지라도.
여기서 재미있는 것이 있는데요. 바로 로즈마리의 존재입니다. 나쟈는 귀족이지만 귀족의 굴레에 얽매이지 않은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섭니다. 반면 로즈마리는 평민이지만 역시 평민의 굴레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섭니다. 이 둘은 각각 신 귀족과 신 평민의 모습이죠. 위에서 내려오고, 아래에서 올라온다. 둘은 대칭적인 존재이지만 동시에 같은 길을 걷는 동지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테나처럼 강하고 아름다운 존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아히루에 훨씬 가까운 존재입니다. 말 그대로 '그냥 오리'이자 세상의 '조역'인 보잘 것 없는 존재이죠. 우테나처럼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아히루 역시 결국 펜던트를 혼자선 풀어내지 못하고 화키아의 도움을 받고서야 풀어냈지 않았습니까. 그런 그녀들의 모습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우테나는 숭배하고, 아히루엔 공감하는 것이죠.
츄츄의 혁명은 분명 성공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오리로 돌아가죠. 이건 말 그대로 혁명을 비꼰 겁니다. 혁명을 이룬 뒤에 네가 빛나고 있을 거라고 착각하지 말라고. 혁명이 성공해도 넌 그냥 오리에 불과한 평범한 존재라고요.
마치 지금 딱 어른이 되어서 현실의 고달픔을 알아버린 사람들에게 하는 말과 같죠. 어른이 되면 빛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학원의 문을 나섰는데 정작 나서보니 현실은 만만찮더라는 겁니다. 학원 안에서는 그래도 평범한 여자아이에 가끔 츄츄와 같은 공주님이 될 수도 있었는데 학원을 나서면 넌 그마저도 못한 오리일 뿐이라는, 그런 무서운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죠.
우테나는 그런 무서움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우테나에서 추구한 것은 혁명 그 자체였으니까요. 그래서 현실은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저 학원을 나서는 모습만을 보여주죠. (대신 학원 안에서 개고생하지만...ㄱ-)
하지만 츄츄는 그 뒤의 현실까지 알려줍니다. 훨~씬 더 잔인한 짓이죠. 꼭 이러는 것 같달까요? '너 이래도 혁명하고 싶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히루는 혁명을 일으킵니다. 혁명 뒤에는 자신이 어떻게 존재할 것인지 알면서도. 왜냐하면 화키아가 말해주었기 때문이죠. 그때가 되어서 같이 있어주겠다고.
현실 속에서, 비록 보잘것없는 존재가 된다 하더라도 그 곁에는 그런 자신조차도 사랑해줄 사람이 분명 존재하기에 아히루는 용기를 냅니다. 마치 지금 우리가 스스로를 초라하다고 여기며 슬퍼하지만 그런 우리조차도 사랑해주는 주변인들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작품을 보면서 사람들이 제일 황당해하는 것은 춤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 해결한다는 겁니다. 어떻게 춤으로 사건을 다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인지 납득이 안가죠. 하지만 그건 또 반대로 되물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싸움으로 사건을 다 해결할 수 있나요?
소년만화에 흔히 나오는 구도가 주먹질을 나눈 다음에 서로 마음이 통했다고 하는 겁니다. 솔직히 본인은 이런 작품을 워낙 많이 봐 왔기에 익숙해져 있어서 별로 어색하다는 생각을 못해왔습니다. 하지만 츄츄를 보고 난 뒤 이런 점이 굉장히 어색하게 다가왔죠. 그래서 고민끝에 이런 결론은 내렸습니다. 저런 방식은 일종의 남자들만의 대화방식이라구요.
소녀만화의 경우에는 거의 다 '말로하는' 대화입니다. 처음엔 싸우더라도 문제가 해결되는 직접적인 계기는 대화이죠. 몸짓, 눈동자의 움직임, 표정, 말투. 이 모든 것이 대화의 한 방식입니다. 츄츄는 발레를 통해서 그런 대화를 표현하는 것이구요. 그래서 소년만화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의 경우 이 작품이 매우 어색해 보일 수 있습니다.
1기 초반과(너무 잔잔해서...) 2기 초반(진도가 너무 느려서...)에서 리타이어했을 가능성이 높아보임.
다 보고 난 뒤 생각해보면 역시 좋은 작품이었다 싶다.
발레라는 요소를 통해 말보다 행동과 몸짓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그 모습이 아히루라는 캐릭터와 너무나 잘 어울렸고, 작품 전반에 깔린 따스하지만 비극적인 감정선이 오스카와일드의 동화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음.
"운명을 받아들이는 자에게는 행운이 있으리, 운명을 거역하는 자에게는 영광이 있으리."
처음엔 어떤 선택을 하든 응원하겠다는 말인가~ 했는데, 결말까지 다 본 후 생각해보니 '운명에서 도망치지 마라'라는 의미였을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아히루의 운명은 프린세스 츄츄가 아닌 오리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었고, 뮤토나 화키아, 루우에게도 드롯셀마이어가 안배한 각자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 츄츄는 그 운명을 직시하지 못하던 이들이 결국 운명을 거역하거나(루우), 받아들이는(아히루) 이야기이다.
모두 자신의 운명을 직시했기에, 이 이야기는 끝날 수 있었던 것이다.
나와는 다른 영웅적인 인물이 아니라 평범한 나와 똑같은 이일지라도, 끝없이 흔들리고 갈등하면서도 결국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행동할 수 있는 모습을 보면 속절없이 감동하게 된다. (엑시트도 그렇고...)
그래서 나쟈는 귀족이 아닌 신 여성의 길을 걷습니다. 그 모순을 타파하기 위해서. 설사 그게 100년 후의 일이라 할지라도.
여기서 재미있는 것이 있는데요. 바로 로즈마리의 존재입니다. 나쟈는 귀족이지만 귀족의 굴레에 얽매이지 않은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섭니다. 반면 로즈마리는 평민이지만 역시 평민의 굴레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섭니다. 이 둘은 각각 신 귀족과 신 평민의 모습이죠. 위에서 내려오고, 아래에서 올라온다. 둘은 대칭적인 존재이지만 동시에 같은 길을 걷는 동지입니다.
https://blog.naver.com/125519518914/52037570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테나처럼 강하고 아름다운 존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아히루에 훨씬 가까운 존재입니다. 말 그대로 '그냥 오리'이자 세상의 '조역'인 보잘 것 없는 존재이죠. 우테나처럼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아히루 역시 결국 펜던트를 혼자선 풀어내지 못하고 화키아의 도움을 받고서야 풀어냈지 않았습니까. 그런 그녀들의 모습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우테나는 숭배하고, 아히루엔 공감하는 것이죠.
츄츄의 혁명은 분명 성공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오리로 돌아가죠. 이건 말 그대로 혁명을 비꼰 겁니다. 혁명을 이룬 뒤에 네가 빛나고 있을 거라고 착각하지 말라고. 혁명이 성공해도 넌 그냥 오리에 불과한 평범한 존재라고요.
마치 지금 딱 어른이 되어서 현실의 고달픔을 알아버린 사람들에게 하는 말과 같죠. 어른이 되면 빛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학원의 문을 나섰는데 정작 나서보니 현실은 만만찮더라는 겁니다. 학원 안에서는 그래도 평범한 여자아이에 가끔 츄츄와 같은 공주님이 될 수도 있었는데 학원을 나서면 넌 그마저도 못한 오리일 뿐이라는, 그런 무서운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죠.
우테나는 그런 무서움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우테나에서 추구한 것은 혁명 그 자체였으니까요. 그래서 현실은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저 학원을 나서는 모습만을 보여주죠. (대신 학원 안에서 개고생하지만...ㄱ-)
하지만 츄츄는 그 뒤의 현실까지 알려줍니다. 훨~씬 더 잔인한 짓이죠. 꼭 이러는 것 같달까요? '너 이래도 혁명하고 싶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히루는 혁명을 일으킵니다. 혁명 뒤에는 자신이 어떻게 존재할 것인지 알면서도. 왜냐하면 화키아가 말해주었기 때문이죠. 그때가 되어서 같이 있어주겠다고.
현실 속에서, 비록 보잘것없는 존재가 된다 하더라도 그 곁에는 그런 자신조차도 사랑해줄 사람이 분명 존재하기에 아히루는 용기를 냅니다. 마치 지금 우리가 스스로를 초라하다고 여기며 슬퍼하지만 그런 우리조차도 사랑해주는 주변인들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https://blog.naver.com/125519518914/50989301
소년만화에 흔히 나오는 구도가 주먹질을 나눈 다음에 서로 마음이 통했다고 하는 겁니다. 솔직히 본인은 이런 작품을 워낙 많이 봐 왔기에 익숙해져 있어서 별로 어색하다는 생각을 못해왔습니다. 하지만 츄츄를 보고 난 뒤 이런 점이 굉장히 어색하게 다가왔죠. 그래서 고민끝에 이런 결론은 내렸습니다. 저런 방식은 일종의 남자들만의 대화방식이라구요.
소녀만화의 경우에는 거의 다 '말로하는' 대화입니다. 처음엔 싸우더라도 문제가 해결되는 직접적인 계기는 대화이죠. 몸짓, 눈동자의 움직임, 표정, 말투. 이 모든 것이 대화의 한 방식입니다. 츄츄는 발레를 통해서 그런 대화를 표현하는 것이구요. 그래서 소년만화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의 경우 이 작품이 매우 어색해 보일 수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125519518914/50559262